검은 월요일: 1987년 10월 19일, 22.6% 폭락이 금융 세계를 바꾼 이야기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아침, 뉴욕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더들은 평소처럼 출근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녁, 그들은 금융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하루를 목격한 생존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단 하루 만에 다우존스 지수는 22.6% 폭락했고, 5,000억 달러가 넘는 부가 공중으로 증발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주가 하락이 아니었습니다. 현대 금융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기술이 어떻게 공포를 증폭시킬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1987년 블랙 먼데이 당시 FTSE 100 지수 폭락 그래프 – 세계 금융시장 대혼란을 보여주는 차트.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그날, 월스트리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1987년 10월 19일 개장과 함께 매도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통제 가능해 보였던 하락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걷잡을 수 없는 재앙으로 변했습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508포인트 하락, 무려 22.6%의 낙폭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1929년 대공황의 시작을 알렸던 '검은 화요일'의 12.8% 하락을 훨씬 뛰어넘는, 뉴욕 증시 역사상 최악의 하루였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이 미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홍콩(-45.8%), 호주(-41.8%), 영국(-26.4%) 등 전 세계 주요 증시가 도미노처럼 무너졌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된 공포는 시차를 타고 번져나가며 24시간 동안 전 세계를 공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거래소 바닥은 아비규환이었습니다. 트레이더들은 비명을 지르며 매도 주문을 외쳤고, 전화기는 쉴 새 없이 울렸습니다. 한 베테랑 트레이더는 훗날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마치 세상의 종말을 보는 것 같았다. 모두가 출구를 향해 달려가는데, 출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 보이지 않는 살인자: 프로그램 매매의 역습

블랙 먼데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기술이 촉발한 최초의 글로벌 금융 위기였다는 점입니다.

1980년대 중반, 월스트리트에는 새로운 무기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한 프로그램 매매였습니다. 이 시스템은 인간의 감정 없이 미리 설정된 규칙에 따라 자동으로 대량의 주식을 사고팔 수 있었습니다.

특히 '포트폴리오 보험(Portfolio Insurance)'이라는 전략이 유행했습니다. 이는 주가가 하락하면 자동으로 선물을 매도해 손실을 제한하는 방식이었죠. 이론적으로는 완벽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10월 19일, 이 '완벽한' 시스템은 재앙의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그날의 악순환은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자, 수백 개의 프로그램 매매 시스템이 동시에 매도 신호를 감지했습니다. 거대한 매도 주문이 시장에 쏟아졌고, 이는 주가를 더욱 떨어뜨렸습니다. 떨어진 주가는 다시 더 많은 프로그램 매매를 촉발시켰습니다.

인간 트레이더들이 개입하려 해도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컴퓨터는 인간보다 빠르게,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매도를 실행했습니다. 마치 핵폭탄의 연쇄 반응처럼, 시스템은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뉴욕 증권거래소의 전산 시스템은 폭주하는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거래 체결이 한 시간 이상 지연되면서, 투자자들은 자신의 주문이 어떤 가격에 체결될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이 불확실성은 공포를 더욱 키웠습니다.

공포는 어떻게 전염되는가: 집단 심리의 폭주

하지만 블랙 먼데이를 단순히 기술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이것은 인간 심리의 문제였습니다.

1980년대 중반 미국 증시는 5년 넘게 상승세를 이어가며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금리는 상승하고 있었고, 무역 적자는 확대되고 있었으며, 달러 가치는 불안정했습니다. 시장은 마른 장작더미처럼 작은 불씨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0월 14일 수요일부터 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도 큰 폭의 하락이 이어졌습니다. 주말 동안 투자자들은 불안에 떨며 월요일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공포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투자자들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 맴돌았습니다. "1929년 대공황이 다시 오는 것은 아닐까?" 이 두려움은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켰습니다. 펀더멘털 분석도, 가치 평가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의 명령만이 존재했습니다. "지금 당장 팔아라!"

심리학에서는 이를 '무리 행동(Herd Behavior)'이라고 부릅니다. 한 사람이 달리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이유를 묻지 않고 따라 달립니다.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두가 동시에 출구를 향해 달려갔지만, 출구는 너무 작았습니다.

기관투자자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뮤추얼 펀드 매니저들은 환매 요구에 직면해 보유 주식을 팔아야 했습니다. 연기금들도 손실을 제한하기 위해 매도에 나섰습니다. 합리적이어야 할 전문가들마저 공포의 소용돌이에 휩쓸렸습니다.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

블랙 먼데이는 현대 금융 시장의 놀라운 연결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도요.

뉴욕에서 시작된 폭락은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로, 다시 유럽으로 번져나갔습니다. 1987년 당시에도 이미 시장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한 시장의 폭락은 다른 시장에 즉각 영향을 미쳤습니다.

홍콩 증시는 무려 45.8%나 폭락하며 거래를 중단해야 했습니다. 호주도 41.8% 하락했습니다. 런던, 프랑크푸르트, 파리 모두 20% 이상 급락했습니다. 지구촌 전체가 같은 악몽을 꾸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주가 하락을 넘어 시스템적 위기였습니다. 대형 증권사들이 파산 위기에 처했고, 은행 시스템도 위협받았습니다. 신용 시장은 얼어붙었고,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중앙은행들과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면, 블랙 먼데이는 1929년과 같은 대공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위기에서 배우다: 서킷브레이커의 탄생

다행히 블랙 먼데이는 대공황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당시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즉각 대응했습니다. 그는 "Fed는 유동성 공급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선언하며 시장에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은행들에게 증권사에 대한 대출을 장려했고, 금리 인하를 암시했습니다.

이러한 신속한 대응 덕분에 시장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금융 당국과 시장 참여자들은 깊은 반성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 제도였습니다.

서킷브레이커는 전기 회로의 차단기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과부하가 걸리면 회로를 차단해 시스템을 보호하는 것처럼, 주가가 급락하면 거래를 일시 중단해 시장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서킷브레이커의 작동 원리는 간단하지만 강력합니다:

주가지수가 단기간에 일정 수준 이상 급락하면, 거래가 자동으로 중단됩니다. 이 '쿨링 타임' 동안 투자자들은 숨을 고르고, 냉정하게 상황을 재평가할 수 있습니다. 패닉에 의한 충동적 매도를 막고, 시장에 이성을 되찾게 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1988년 서킷브레이커를 도입했고, 이후 전 세계 증시가 이를 따랐습니다. 한국도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이 제도를 도입했죠.

또한 프로그램 매매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급격한 시장 변동 시 프로그램 매매를 제한하거나 중단하는 규칙이 만들어졌습니다. 거래소의 전산 시스템도 대폭 업그레이드되어 거대한 주문량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블랙 먼데이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

37년이 지난 지금, 블랙 먼데이는 여전히 중요한 교훈을 전해줍니다.

첫째, 기술은 양날의 검입니다. 프로그램 매매는 효율성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위기를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날 AI와 고빈도 거래(HFT)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이 교훈은 더욱 중요합니다.

둘째, 시장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효율적 시장 가설을 믿었던 많은 경제학자들은 블랙 먼데이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장은 때때로 비이성적이며, 집단 심리에 휘둘릴 수 있습니다.

셋째, 규제와 안전장치는 필수입니다.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조차 서킷브레이커의 필요성을 인정합니다. 시장의 자유와 안정성 사이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넷째, 글로벌 연결성은 축복이자 저주입니다. 한 시장의 위기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질 수 있습니다. 국제 공조와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미국 증시는 2주 사이에 네 번이나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었습니다. 하지만 1987년과 달리, 시장은 훨씬 질서 정연하게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블랙 먼데이의 교훈이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마치며: 역사는 반복되는가?

금융 시장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한 가지 패턴을 발견하게 됩니다. 위기는 언제나 "이번은 다르다"는 생각 속에서 찾아옵니다.

1987년 당시 사람들은 컴퓨터와 프로그램 매매가 시장을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위기의 촉매제가 되었죠.

오늘날 우리는 AI, 빅데이터, 블록체인으로 무장한 금융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훨씬 정교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다음 블랙 먼데이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까요?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곳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겸손함과 경계심을 잃지 말라고.

1987년 10월 19일, 검은 월요일. 그날의 공포와 교훈은 오늘도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딩 플로어와 전 세계 거래소의 서버룸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교훈을 기억하는 한,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같은 방식으로는.


"시장은 계단으로 오르고 창문으로 떨어진다" - 월스트리트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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